바람타고 전해지는 신들의 노랫소리…푸른 빛 감도는 그리스

입력 2015-08-31 07:10  

황금비율·착시현상 어우러진 신전…절제와 균형의 섬, 낙소스의 매력
뜨거운 태양, 에게海로 사그라지면 하얀 산토리니 붉게 물들어



그리스는 신들의 터전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그리스에서 먹고 취하고 사랑하고 질투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신화로 여겨지는 지금도, 어쩌면 신들은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을 조롱하거나 동경하면서 우리와 공존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 위로 찬란한 문화유산이 가득한 그리스로의 여정이다. 물론 어느 곳을 가든, 신과 함께다.


신의 발소리에 깨어나는 도시, 아테네

아침이 밝았다. 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신들의 도시 아크로폴리스를 보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신들의 도시는 붉고 푸른빛이 우아하게 감도는 여명을 배경으로 우뚝 서서 산 아래 모여 사는 사람들을 굽어보는 듯했다. 저곳에서 신이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면 신의 기척에 놀란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그 소리에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테네에서의 첫 목적지는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정했다. 아르카이크 시대와 로마 시대까지 도시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을 모틂塚?곳이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구덩이 안으로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넣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직 출토 중인 고대도시의 지하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입구를 지나 박물관으로 들어선 후에도 투명한 유리바닥을 통해 수많은 유물이 잠들어 있는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총 3개 층으로 구성된 박물관 내부는 수많은 신의 수많은 이야기를 재현한 대리석 조각들, 몸짓과 표정으로 환희와 비애의 시대를 대변하는 석상들의 행렬, 민주정치와 올림픽이 시작된 그리스의 생활상 등 도시의 모든 과거가 한눈에 펼쳐지도록 구성했다. 유물의 백미는 단연 아크로폴리스의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여섯 여사제 상이다. 각기 다른 아름다운 얼굴과 몸짓의 사제상 앞에서 사람들은 넋을 잃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세계적인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는 파르테논을 형상화해 박물관을 지었다. 3층에는 신전의 규모와 같은 비율로 회랑을 설계했고, 회랑 한편에는 파노라마 윈도를 만들어 실제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보이는 압도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실제와 재현이, 과거와 현재가,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느낌을 만끽한 후 진짜 신들의 도시,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올라갔다.


아크로폴리스의 백미,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는 높고 작은 산에 있어 경사가 심한 편이다. 하지만 도시를 향해 오르는 길목 중간중간 고대 유적들이 펼쳐져 발길, 눈길을 사로잡는다. 덕분에 시간을 두고 쉬엄쉬엄 올라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다. 가장 오래된 원형극장인 디오니소스 극장과 기원전 161년에 지어져 아직까지 음악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수용인원 5000명 규모의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을 지나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올랐다.

신의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아테네 도시 곳곳에 펼쳐진 신전, 아고라, 유적들이 현재와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뺏겨 발길을 멈추길 반복하다가 마침내 신의 도시로 통하는 관문에 도착했다. 불레의 문과 니케 신전, 아그리파 기념비를 둘러보고 도리아 양식의 거대한 문인 프로 필리아를 지나자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이 섬세하게 조각된 여섯 여사제 상(진품은 박물관에 있다)이 기둥을 받치고 선 에레크테이온 신전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신전 앞에 있는 올리브나무는 도시의 수호신 자리를 두고 포세이돈과 경합을 벌인 아테나 여신이 선사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1917년 독일의 고고학자가 심은 것이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지나면 비로소 아크로폴리스의 백미인 파르테논 신전과 마주하게 된다. 아테나 여신에게 바친 신전으로, 미케네 시대부터 중요한 거점이자 고대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빛나는 유적이다. 세계문화유산 1호이자 유네스코의 엠블럼이다. 황금비율, 착시현상을 이용한 건축 기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자신에게 봉헌된 신전을 전쟁으로부터 지키지 못했다. 1687년 오스만튀르크와 베네치아군의 전투로 일부가 파괴됐고, 이후 지진으로 신전의 반 이상이 무너져내려 현재까지 복원 중이다. 유물의 잔해는 아크로폴리스 곳곳에 흩어져 있다. 버려진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돌조각 하나하나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부서져 폐허가 된 듯 보이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엄숙한 기품과 위용을 뽐내며 도시 전체를 수호하는 느낌이다.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아폴론의 섬, 낙소스

낙소스는 우리에게 낯선 섬이다.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에서 산토리니까지의 여정 중간, 낙소스 신이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한 이 섬에 내려 이틀을 보냈다. 가장 먼저 여행자를 맞는 것은 낙소스 섬의 상징인 팔라티아 섬(낙소스 본섬과 연결돼 있으며 섬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크키다)에 우뚝 선 아폴론 신전이다. 기원전 6세기 아폴론 신에게 봉헌된 신전은 디오니소스와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 공주가 처음 만난 곳이라는 신화 속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낙소스는 그리스 남부 키클라테스 제도 중 가장 큰 섬으로 절제와 균형, 조화와 질서를 중시하는 아폴론을 기리는 섬답다. 여행과 삶이 중첩되는 느낌을 만끽하고 싶다면 여기만한 곳이 없다. 낙소스는 예로부터 대리석과 구리 등의 자원과 지중해 작물이 풍요롭게 나 돈이 도는 섬이었다고 한다. 차를 빌려 섬 구석구석을 느긋하게 돌았다.

메마르고 거친 석산이 빽빽이 들어선 굽은 길을 따라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사그리마을이다. 이곳에는 산맥의 경사면이 쉬어가는 거대한 평원 위에 우아하게 자리 잡은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이 있다. ‘농업의 여신’을 기리는 아름다운 신전 주변으로는 작고 가는 들꽃과 올리브나무 군락이 펼쳐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땅의 기운은 더없이 아늑하고 포근했다. 차를 타고 돌아볼수록 섬 구석구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느낌은 더해지고 배가 됐다.

사그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할키마을은 작은 마당 규모의 광장 주변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둘러싼 풍경이 정답고 평온했다. 대리석 생산지로 유명한 부자마을 아피란토스와 필로티는 도로, 다리, 계단 등 마을을 이루는 대부분 것들이 대리석이라 놀라웠다. 산자락을 따라 돌던 중 양치는 목동을 만나 길을 내주기도 하고, 뾰족한 석산 꼭대기마다 들어선 그리스정교회의 푸르고 둥근 지붕을 올려다보며 교회를 지키는 수도사들이 버틸 고독의 무게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섬을 돌아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항구 근처의 구시가지. 언덕을 오르는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타임슬립이 시작된다. 13세기 지어진 코라 성과 비잔틴 뮤지엄으로 개관한 크리스피 타워를 정점으로 비탈을 따라 내려오면 주거지구와 여행자를 위한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가 밀집된 상업지구를 차례로 둘러볼 수 있다. 작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때로는 머리를 숙이고 등을 구부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길 위로 수세기는 족히 지났을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하지만, 여전히 낙소스 섬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활기차게 숨쉰다.

‘신화의 섬’ 산토리니, 흰색에 물들다

섬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이 산토리니를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담는 이유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절벽을 타고 흐르는 흰 벽과 푸른 지붕의 물결, 그 아래로 펼쳐진 화산암의 붉은 속살은 섬을 마주한 모두를 단번에 매혹했다. 상상 속 지중해 풍경의 완결이라 해도 부족할 게 없었다. 더불어 이 섬이 간직한 신화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산토리니는 기원전 1500년께 폭발한 화산섬 티라와 함께 사라진 키클라테스 문명, 그 문명이 번성했던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라고 전해진다. 사실이 될 만한 근거가 없는 추측일 뿐이지만, 미약한 가능성만으로도 섬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기엔 충분하다.

섬에는 신화의 이름을 고스란히 딴 아름다운 서점이 있다. 영국의 젊은 문학도 두 명이 산토리니 이아마을에 문을 연 아틀란티스 서점이다.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이 서점 안 간이침대에서 숙소를 제공받는 대신 아르바이트로 서점을 운영하는 독특한 경영 방식으로 이름이 났다.

서점을 찾은 수많은 여행객이 기증하고 간 각국의 언어로 출판된 책들이 빼곡한 것도 여기만의 매력이다. 서점이 있는 이아마을은 볼거리로 넘친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가 많고 아기자기한 기념품과 산토리니의 특산품, 옷가지,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골목의 좁은 길을 따라 자리 잡았다.

에게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레스토랑과 호텔이 들어섰다. 깎아내린 절벽을 따라 아슬하게 이어지는 골목을 누비다 보니 어느덧 일몰시간. 굴라스 성채로 향했다. 이미 많은 여행객이 한자리에 모였다. 날이 흐려 붉은빛으로 물든 에게해의 낙조는 보지 못했지만 동화 같은 마을에 차례로 불이 켜지는 광경을 마주한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오랜된 미로 같은 마을이 산토리니의 진짜 매력

산토리니의 유명한 관광지는 섬 북쪽의 이아마을과 섬 중앙의 피라마을, 섬 주변의 검고 붉은 다양한 색채를 뽐내는 여러 해변으로 나뉜다. 피라마을엔 크루즈선이 정박하는 항구가 있어 언제나 붐빈다. 전형적인 관광지의 모습으로 특유의 활기가 다소 소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피라마을의 최고 볼거리는 600여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당나귀들의 행렬이다. 당나귀는 항구에서 마을까지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이동할 수단이 마땅치 않던 시절,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현재는 케이블카를 운행하기 때문에 당나귀를 타고 마을까지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고, 마을을 상징하는 관광상품이 됐다. 피라마을에도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넘치지만, 이아마을에 비해 다소 조악한 느낌의 상품이 많으니 쇼핑은 이아마을에서 하는 게 좋겠다.

산토리니 구석구석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오래된 마을들이 있다. 13세기에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성채가 있는 피르고스 마을, 와인 생산농가와 산토리니의 유명한 맥주인 동키 비어의 양조장이 몰려 있는 메사 고니아, 15세기에 세워진 요새가 있는 엠포리오 마을 등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자. 인적이 드문 오래된 미로 같은 마을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은 물론 산토리니의 진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터키항공을 이용해 이스탄불을 거쳐 그리스의 아테네로 들어가는 경로를 추천한다. 인천~이스탄불 구간은 주 11회, 이스탄불~아테네 구간은 주 42회 운항한다. 유로존 탈퇴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아직까지는 유로를 사용한다. 아테네를 제외한 섬을 여행할 때 렌터카 이용은 필수다. 성수기, 비수기에 따라 버스 노선과 배차시간이 달라 여행객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렌터카 비용은 하루 약 60유로. 성수기는 6~9월이며 지중해의 파란 하늘과 내리쬐는 태양을 만끽할 수 있다.

아테네=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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